'내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내 다리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내가 란도너스를 시작한 계기는 사실 이렇게 아름답지 않았다. 언제나 겉으로는 도전을 외치면서 대회를 나갔지만 자전거를 탄 경력이 얼마 되지 않고, 뚱뚱한 몸으로 인해 결과는 항상 중간이었다. 심지어 지인이 1등을 해서 포디엄에 올라갔을 때, 꼴찌도 경험해봤다. 겉으로는 항상 도전을 외치면서 ‘도전에 대해 누구나 인정할 만한 결과를 만들어봤는가?’라는 스스로 질문에 너무 부끄럽고 화가 났다. 

란도너스를 처음 시작한 이유는 이런 열등감 때문이었다. 란도너스를 시작할 때, 힘내라고 응원해주는 사람도 많았지만 ‘네가 할 수 있겠어?’, ‘넌 못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20대는 아직 실패도, 성공도 경험해봐야 아는 나이다. 내가 성공한다면 아름다운 성공기를 기사에 쓸 것이고, 실패하면 실패했다고 기사에 쓰고 다시 도전할 것이다. 성공과 실패, 두 가지 결과 모두 나에게는 결국 경험이 될 것이다. 이 글은 처음 란도너스에 입문하는 사람을 위한 란도너스 가이드이자,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 담긴 도전기다.

 

서울600K브레베에 도전하다

란도너스는 최소 200km 이상, 많게는 1,200km 넘는 거리를 달려야 하는 비경쟁대회다. 외부의 도움 없이 자신의 힘으로 정해진 제한시간 안에 완주하는 것이 목표다. 그중에서 내가 신청한 것은 ‘서울600k브레베’다. 600km의 거리보다 8,745m라는 높은 상승고도 때문에 다른 지역의 600km 코스보다 어렵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충주, 안동, 봉화, 영월, 평창, 횡성, 원주, 양평 등 서울에서 출발해서 경기도, 충청북도, 경상북도, 강원도를 40시간 안에 완주해야 한다. 신청해놓고 겁이 났지만 물러날 수 없었다. 지금이 아니면 내년을 기다려야 하는 대회니까.

일단 출발하기 전 준비물을 챙겨야 했다. 장거리 라이딩인 만큼 준비물이 많았다. 필수 준비물로 야간 라이딩을 위한 전조등 2개, 후미등 2개가 필요하고, 몸 전체를 감쌀 반사조끼와 반사 발목밴드를 착용해야 한다. 그리고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자전거보험(개인상해보험 중 일상생활중책임보험 약관이 있다면 대체 가능)을 가입해야 했다.

반사 조끼는 코리아 란도너스가 공식 승인한 오스바이크웨어의 브레베 질렛을 구입했다. 앞에는 방풍원단을 사용해 바람을 막아주고, 뒷면은 가볍고 편안한 메시 원단을 사용했다. 특히 다른 브랜드의 질렛에 비해 오스바이크웨어의 브레베 질렛은 리플렉터 원단이 두껍고, 길게 들어가 있었다. 야간 라이딩이 잦은 란도너의 안전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이라 더 마음에 들었다. 

 

드디어 시작된 서울600k브레베

5월 27일 새벽 4시, 출발 장소인 반포 미니스톱(일명 반미니) 앞에 도착하자 벌써 많은 사람이 와 있었다. 사고가 나더라도 개인이 책임진다는 ‘사고포기 및 책임면제 동의서’에 서명하고, 검차를 진행했다. 검차는 간단하게 전조등과 후미등, 반사조끼 등의 유무를 검사한다. 그리고 기준점(Control Point)마다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확인 카드를 받았다.

출발 준비가 끝났다. 사실 앞으로의 걱정보다 새벽 공기를 마시면서 달리는 것과 원 없이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설렘이 앞섰다. 해가 막 뜨고 있는 한강은 아름다웠고, 나에게 열심히 달리라고 응원해주는 것 같았다.

달리다보니 자연스럽게 먼저 가던 사람과 그룹라이딩을 하게 됐다. 서로 선두를 바꿔가면서 바람을 막아주고, 자신의 페이스에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서로 속도를 맞췄다. 물론 장거리 라이딩이니 언제까지 함께할 수는 없었다. 란도너스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페이스니까. 

내 페이스에 맞춰서 혼자 앞에서 달리다가 길을 잃기도 했다. 130km쯤 달렸을까? 외길인줄 알고 신나게 달리다가 코스를 이탈한 것이다. 내리막과 평지를 10km가량 달렸는데 다시 오르막을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 되자, 몸보다 정신이 힘들었다. 다른 사람보다 20km의 거리와 시간을 손해 본 것이다.

다시 코스로 돌아가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에 있는 제2기준점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그런지 많은 란도너가 편의점과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있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갔어도 제한시간에 도착할까 말까한데, 길을 잃어서 다른 사람보다 1시간이 늦었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했다. 간단하게 라면과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얼음과 보급식을 준비해서 바로 출발했다.

 

고통을 즐기는 사람들

정오의 뜨거운 햇볕에 살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선크림은 이미 땀에 씻겨나가 기능을 상실했다. 그리고 낙타 등같은 언덕은 체력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청풍호의 아름다운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 번 고비가 찾아왔다. 흔히 ‘쥐’라고 부르는 근육경련이 시작된 것이다.

길가에도 근육경련과 더위로 인해 힘들어 하는 많은 란도너가 있었다. 하지만 다들 이런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나도 자전거 위에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서로 “힘내세요, 우리는 할 수 있어요!”를 외치면서 소백산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소백산의 긴 오르막을 오르자, 정상에서 다리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근육경련이 심해진 것이다. 잠시 그늘에 쓰러져 있었는데, 한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힘내라는 한 마디와 함께 수박과 김밥을 내게 주셨다. 음식을 씹을 힘도 없었는데, 그 따뜻한 한 마디가 다시 움직일 수 있게 해줬다. 다시 한 번 아주머니에게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마음이 담긴 음식을 먹고, 정말 열심히 달렸다. 긴 내리막과 평지 구간을 굉장히 빠른 페이스로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달렸다. 하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고, 장거리를 달리다보니 점점 체력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끼니를 때우기로 했다. 밥을 먹고 나서니 벌써 해가 지기 시작했다. 밤샘 라이딩을 작정하고 갔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야 했다. 안장과 닿는 모든 부분에 통증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통증을 참고, 빕숏 패드에 바세린을 바르면서 안장 위에 올랐다. 

 

무모했던 도전, 실패와 좌절

해가 떨어지고 나니 점점 주변의 기온이 낮아졌다. 특히 강원도 산 속을 달리자니 땀이 식으면서 추위가 시작되었다. 300km가량 달리면서 젖은 옷이 체온을 떨어트렸다. 강원도의 추위를 너무 얕봤던 탓이다. 체온도 문제지만 주변에 라이트로 비추는 곳 이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종종 같은 코스를 달리는 라이더가 보였지만 체력이 떨어져 쫓아갈 수 없었다. 그런 상태로 주행을 하면서 잠시 방심한 순간 갑자기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진 이유는 내리막에 튀어나온 작은 돌부리 때문이었다. 잠시 동안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완주해야겠다는 결심이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꽤 오랫동안 도로 한쪽에 누워있었다. 몸이 아픈 것보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휘저어놓았다. 산속이다보니 주변에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아프다고 칭얼거리거나 울어도 알아줄 사람이 없었다. 이윽고 통증이 잦아들자 속으로 ‘나 정말 미쳤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어느 정도 달리자 코스를 알려주던 가민도 꺼지고, 보조배터리도 제 기능을 다했다. 스마트폰을 절전모드로 해놓고, 지도 앱을 켜고 달렸다. 그러다 이름 모를 마을에서 방을 잡고, 잠시 눈을 감았다. 

해가 떠오르고, 다시 라이딩을 시작했다. 너무 힘들었다. 그동안 달렸던 거리에 비해 남은 거리가 짧았지만 정신과 육체에 한계가 찾아왔다. 긴 오르막을 오르면서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맞은 것처럼 온몸이 아팠다. 결국 페달링을 할 수 없어 길거리에 주저앉았다. 분했다. 정말 분했다. 욕하고 울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다.

멀리서 천천히 트럭 한 대가 내 앞에 멈췄다. 거기서 내린 60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광경을 봤는지, 안쓰러운 표정으로 “탈래요?”라고 묻자,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서 대답했다. 그렇게 도착지인 반포까지 가서, 담당자에게 DNF를 알렸고 서울600k브레베 완주를 포기했다.

 

‘천안200k브레베’완주, 란도너가 되다

서울600k브레베 완주를 포기한 것이 너무 분했다. 다시 도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도전하기 위해서는 1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짧은 코스부터 차근차근 진행하기로 했다. 6월 6일 새벽부터 일어나서 기차에 자전거를 싣고 천안으로 떠났다. 600km를 도전하려던 마음이 있어서 그런지 상승고도 1,706m에 200km의 거리는 그냥 담담한 마음이었다. 

600km 완주를 포기했던 마음에 울분이 있었을까? 기준점인 편의점에서의 휴식을 제외하고, 쉬지 않고 달렸다. 단, 너무 속도를 올려서 지치지 않도록, 오르막을 제외하고는 최대심박의 70%까지만 사용하기로 했다. 비가 오고, 역풍이 불었지만 크게 어려울 것은 없었다.

그렇게 170km쯤 달리다보니, 내 앞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비경쟁대회고, 먼저 들어간다고 좋은 것도 없다. 그냥 완주하면 되는 대회다. 하지만 이번만은 꼭 가장 먼저 들어가고 싶었다. 그리고 비록 기록은 좋지 않지만, 가장 먼저 들어오게 되었다.

 

난 계속 도전할 것이고, 포기하지 않을 거야

이미 란도너스를 즐기고 있는 사람은 고작 600k, 200k 브레베로 왜 이렇게 진지하냐고 이야기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번 도전에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다. 이제 만26살, 인생에 더 많은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돈도 많이 벌어야 하고, 여자친구도 사귀어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한다. 매 선택이 도전이고, 성공과 실패를 반복할 것이다. 나는 올해 백두대간 퍼머넌트를 목표로 삼았다. 상승고도 38,550m, 거리 1,763km를 달리는 것이다. 실패할 지, 성공할 지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꼭 도전할 것이고, 성공하고 싶다.

란도너스에서 느낀 점

첫째, 자기 페이스도 모르면서 처음부터 날뛰면 결국 퍼진다.
둘째, 무서워하거나 슬퍼하는 것은,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셋째, 누구나 정신력이 있으면 할 수 있지만, 그 정신력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은 아니다.
넷째, 포기는 결국 후회와 미련만 남는다.
다섯째, 세상에는 변태가 많고, 나도 그 변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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