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 그란폰도는 모터사이클만 타는 사람에게는 생소한 행사다. 얼핏 들었을 때는 자전거 레이스 같지만, 경주라기보다는 자전거를 사랑하는 사람이 대거 모여 라이딩코스를 함께 달리며 즐거움을 나누는 행사다.

설악 구룡령을 기점으로 약 200km가 넘는 거리를 12시간 동안 달리는 이 행사는 약 2,000여 명 이상의 자전거 라이더가 참여해 수많은 고갯길을 오르고 내리는 라이딩 행사. 이러한 그란폰도에 모터사이클 지원이 필요하다는 소식이 들렸다.

많은 수의 자전거가 도로를 달리기 때문에 주변 도로를 지나는 일반 사륜차와 도로를 공유해야 하고, 그런 과정에서 혼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자전거에 생길 수 있는 문제나 라이딩 중 사고 등의 긴급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민첩한 기동력을 갖춘 인력이 필요한데, 덩치가 작고 빠른 모터사이클이 적격이라는 것이다.

임무를 맡게 되자 모터사이클을 선정할 때가 왔다. 익숙한 개인 차량보다는 아무래도 이런 임무에 최적화된 모터사이클을 고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단 포지션이 편해야 하고 시야가 넓어야 한다. 또 언제든지 바이크를 유턴하고 순간적으로 가속하고 감속할 수 있는 민첩함도 필수였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속 30km이하로 10시간 이상을 지속적으로 자전거와 함께 달려야 하기에, 저속으로 달릴 때의 내구성도 동반되어야 했다. 공랭보다는 수랭 엔진이 유리했고 저속에서의 밸런스도 좋을수록 피로가 덜 쌓일 것 같았다.

여러 가지 고려사항을 체크하며 하나씩 선정 모델을 좁혀가던 중, 문득 스즈키 브이스트롬이 떠올랐다. 여러모로 부족한 면이 없었다. 브이스트롬은 650과 1000 두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파워가 넉넉하고 저속에서 별다른 스로틀 조작 없이 속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점이 생각나 1000 버전을 선택했다. 

행사 시작 지점은 강원도 인제 인근이었다. 일단은 출발지점까지 이동하는 데에만 상당한 거리를 달려가야 했다. 새벽 6시에는 근처에 도착해야 여유가 있었기에 거침없이 달려야 했다. 이럴 때에는 역시 배기량이 커 넉넉한 출력을 가진 브이스트롬1000이 유리했다. 이 모델의 최대 출력은 딱 100마력이다.

진행요원으로 참가하는 인스트럭터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다양한 기종이 있었다. 대형 스쿠터부터 시작해서 럭셔리 투어러까지, 그리고 스포츠 바이크도 간혹 눈에 보였다. 약 10대 이상의 인스트럭터가 출발점에서 대기했다.

출발을 알리는 대형 폭죽과 함께 2,000여 대의 자전거가 일제히 출발했다. 기자가 맡은 선두 조는 선수들이 꽤 모여있는 그룹답게 속도가 빨랐다. 자전거와 함께 나란히 달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지라 속도감이 당황스러웠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중간 그룹과 차이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브이스트롬은 그런 선두그룹 사이에서 달리며 뒤따라오는 자전거가 속도를 유지하며 도로에서 방해물을 만나지 않도록 해야 했다. 차량이 무리해 자전거 사이로 진입하려고 하면 사고방지를 위해 제지하고 질서있게 순서를 기다리도록 해야 했고, 중앙선을 넘어 추월하는 차량을 유도해 신속하게 자전거 무리를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야 했다.

달리다보니 순간 가속력이 필요한 상황이 많았다. 브이스트롬은 V트윈 2기통 엔진으로 최대 토크가 5,000rpm에서 나온다. 모터사이클치고는 무척 저회전 특성이 강한 편인데, 이런 점이 이 행사에 아주 적절했다. 시속 30km 전후로 달리다가도 스로틀만 감으면 치고나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고비는 와인딩 코스에서 저속으로 오르막을 올라가는 자전거 사이에서 위치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나란히 달리면 더욱 방해가 되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멀찌감치에서 흐름을 관찰해야 했다. 물론 이런 길일수록 뒤에서 쫓아오는 일반 4륜차는 답답해하기 일쑤다. 하이빔을 켜며 비키라고 재촉하는 이도 있는가 하면, 흥분해 자전거 무리로 파고들어 겁을 주기도 했다.

그런 장면에서 모터사이클이 꼭 필요했다. 자전거보다는 큰 덩치이기 때문에 사륜차 운전자의 눈에 잘 띄고, 일반인 입장에서는 상황을 통제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경각심을 갖기 마련이다. 행렬 뒤를 바짝 쫓는 사륜차 대열을 이끌고 추월을 유도하며 서로 간에 마찰이 없도록 중재하는 일도 중요하다.

자전거를 위한 몇 개의 보급소는 주로 고개 정상에 있었다.  보급소를 지나면 내리막이 시작되는데, 커브가 급한데다 경사도 상당한데, 자전거의 경우 이런 곳에서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설렁설렁 탔다가는 선수들에게 추월당하며 진행요원이 오히려 방해만 될수도 있는 상황이다. 

빠르게 활강해 내려오는 자전거보다 더 앞서 달리며 먼 앞 도로까지 상황을 살피려하니 자연스럽게 앞 뒤 타이어를 끝날까지 쓰면서 달리게 됐다. 원치않게 풀 뱅킹하게 된 것이다. 내리막에서도 상체가 꼿꼿이 선 브이스트롬의 라이딩 포지션이 안정되게 코너링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내려가다보니 사고가 발행하기도 했다. 자전거와 차량의 충돌사고. 모터사이클 진행요원은 이미 연결된 통신망으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구급차를 요청하고 사고를 처리했다. 그리고 나머지 요원은 그대로 행사 통제를 지속해야만 했다. 길옆에는 타이어 튜브 펑크로 도움을 요청하는 라이더도 있었고 탈수증상으로 음료를 요구하기도 했다. 톱 케이스에 넣어둔 물병을 건네자 너무나 고마워했다.

크고 작은 일을 겪으며 어느덧 중간지점인 100km 지점에 다다르자 엔진도 힘들어 했다. 당일 온도는 29도로 거의 여름날씨에 가까웠고, 거의 대부분 구간을 초저속으로 달렸으니 엔진이 힘들 만도 했다. 냉각 팬이 돌고 멈추고를 반복하면서 다행히도 엔진 수온계는 미동이 없었다. 롱텀을 진행하면서도 경험했지만 역시 가혹한 조건에서도 신뢰할 만한 엔진이라는 느낌이 또 들었다.

윈드스크린은 달리면서도 손으로 밀어 조작할 수 있었다. 행사 중에는 거의 최하높이로 두고 달렸다. 날씨가 덥고 조금이라도 시야가 넓어야 했기 때문이다. 핸드 가드는 바람을 잘 막아줘 손으로 오는 피로도가 적었고 시동키와 함께 쓰는 톱 케이스에는 비상 공구와 물병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만큼 행사 통제용 바이크로 적합한 것이 또 있을까?

서스펜션은 특히 감탄을 자아냈다. 어떤 속도에서도 완벽히 충격을 걸러주고 접지력을 끌어냈다. 거칠게 스로틀을 감아도 트랙션컨트롤이 경고를 보내며 차체의 미끄러짐을 잡아줬다. 행사 사고 시 급 정거를 하면 ABS가 믿음직하게 작동했다. 

심지어 고개 정상까지 시속 10km로 오르막을 오르면서도 밸런스가 유지된다. 균형감이 매우 좋아 이런 속도에서도 스트레스가 없다는 점은 놀랍다. 그 와중에 연비는 리터당 21km/L로 유지된다. 극저속과 고속을 오가는 악조건인데도 상당히 일관적인 연비를 보여줬다. 20리터의 연료탱크를 가득채우면서도 혹시 행사도중 연비가 떨어져 급유를 하게 되면 방해가 되지 않을까했던 걱정은 기우였다.

아침 7시부터 저녁 5시까지 꼬박 10시간을 달린 자전거 무리가 결승점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자전거와 함께 달린 것은 독특한 경험이었다. 자전거 라이더의 체력과 끈기가 새삼 대단하다고 느껴졌고, 브이스트롬의 활약또한 기대 이상이었다.

한편 곧 신형 브이스트롬1000은 XT버전으로 국내 출시된다. XT버전은 와이어 스포크 휠이 순정으로 장착되며 튜브가 없는 타입으로 관리 편의성이 일반 캐스팅 타입과 같다. 또 하나 큰 이점은 코너링 ABS와 연동 브레이크가 결합된 스마트 ABS가 추가된다는 점이다. 이로써 와인딩에서 좀 더 공격적으로 스포츠 주행을 할 수 있고, 더불어 안전마진도 얻게 된다. 기회가 된다면 신형 버전으로 같은 행사에 참가하고 싶은 의지도 있다. 그만큼 브이스트롬은 언제나 돌발상황을 통제할 수 있으면서도 충분한 자체 성능을 갖추고 있었다. 

브이스트롬 1000XT는 국내시장에서도 기대가 크다. 기존대비 소비자가는 거의 오르지 않으면서도 훌륭한 부가 장비가 더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즈키 고유의 오프로드 컬러인 챔피언 옐로우도 추가된다. 아마도 이 컬러는 금세 매진될 것으로 보인다.

자전거와 모터사이클 모두 이륜차라는 특성이 있어 일반 도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륜자동차와는 연대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혼자는 서 있지 못하고, 대신 달리면 안정화되는 독특한 탈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자전거 문화 사이에서도 거부감없이 어우러져 임무를 잘 수행해 낸 브이스트롬이 대견해 보인다. 

<저작권자 © 라이드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